• [월간아버지] 사람의 길 - 희망의 여울돌로 살아갑니다 [잡지]
  • 여울돌
    조회 수: 11, 2017.10.15 20:22:38
  • 사람의 길
    스물일곱 번째 특강

    희망의 여울돌로 살아갑니다

    박봉진 | (사)여울돌 이사장


    한 늙은 수도승이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산에 심고서 제자에게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 물을 주라”고 했다. 
    제자는 아침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3년 동안 죽은 나무에 물을 주러 산에 올라갔다 저녁이 되어서야 내려오곤 했다. 그러다 마침내 ‘죽은 나무에 꽃이 만발하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전설을 들었다. 죽은 나무마저 살려내는 정성이 있다면 세상에 얼마나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날까?

    우리 곁에 그런 정성으로 지긋이 ‘희망의 물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희귀난치성질환으로 고통당하는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희망의 징검다리 ‘여울돌’ 이야기다. 2002년부터 여울돌 가족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박봉진 이사장은 ‘특별한 일이라고 의식한 적 없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며 덤덤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위태롭게 생명을 이어가는 아이들과 절망에 빠진 부모에게 ‘우리 함께 가자’라고 손 내밀 때마다 그들에게 희망이 열리는 것을 본다. 당장 보이는 현실만 본다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꺼져 가는 어린 생명이 불꽃처럼 살아나고, 희망의 꽃을 피우리라는 믿음으로 여울돌을 놓는다”는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거친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게
    2002년 5월 24일 KBS1TV <병원24시>에서 우연찮게 ‘유리공주 원경이’를 보았다. 선천성면역결핍증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던 원경이는 꾸밈없이 맑고 꿈도 많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방송 다음 날 감동을 느낀 온라인 네티즌들이 ‘힘내라 원경아’라는 다음카페를 개설했는데, 가입하고 보니 자발적으로 모인 중, 고등학생이 운영진이었다. 당시 스물일곱이었던 나는 연장자로서 좀 더 체계적으로 카페를 운영하도록 돕고 싶었다. 정관이나 회칙 등을 만들고 순수 동호회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워낙 희귀난치병에 대해 생소하던 시절이라 그해 7, 8월에 원경이 이야기를 전단지로 만들어 길거리 공연을 나갔고,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행사를 이어갔다. 서울, 대구, 부산, 전라도에 지부가 만들어졌고, 5천 명으로 시작한 동호회는 8만5천 명으로 불어났다. 바로 그해 12월 5일 희귀난치성질환 어린이 후원단체 ‘여울돌’을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여울돌’은 순수 한글로 ‘물이 흐르다가 강폭이 좁아져 물살이 세지는 곳’이란 뜻의 ‘여울’과 거센 물살을 건너가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자는 의미의 ‘돌’을 합쳐 지은 이름이다. 여울돌은 원경이처럼 현대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희귀난치성질환 아동과 그 가족에게 후원금 100%를 고스란히 전하자는 취지를 다졌다.

    2002년 만난 중, 고등학생들이 30대 초중반이 되어 각자 사회에 자리매김하면서 여울돌 가족으로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하여 자기 성장을 이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귀하다. 지금의 여울돌을 있게 해준 원경이는 2013년 9월 끝내 하늘나라로 떠났다.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하고 나중에 크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며 환하게 웃던 천사를 보내고, 더 많이 돕지 못해 미안하고 애처로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희망을 기증하는 삶
    후원아동 가운데 예지(15살)는 4살 때부터 ‘만성 가성 장 폐쇄증후군 또는 만성 거짓장폐색’이라는 희귀병으로 모든 장기가 괴사하기 시작했다. 여울돌을 만나기 전까지 9년 동안 병원에서 물조차 못 마시고 수액으로 연명했다. 예지 부모님은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매달 평균 150~300만 원가량 드는 검사비와 입원비 등을 감당하기 위해 집과 차를 모두 팔아야 했다. 예지 어머니는 너무 지치고 무서운 마음에 죽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2015년 7월 예지를 후원아동으로 결정했고, 9월에 다장기 이식을 대비한 수술을 진행하였다. 이식할 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늘어난 소장을 잘라내고, 입으로 음식을 먹을 때 공장루를 통해 배출하도록 밖으로 꺼내놓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후 예지는 소화는 못시켜도 입으로 음식 맛을 보았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학교도 가고, 통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뇌사자의 장기를 기증받아 다장기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공여자가 있어도 성공률이 30% 미만이라 부모로서 선택하기 어려운 수술이다.

    그럼에도 예지 어머니는 “여울돌과의 만남처럼 예지의 몸에도 기적이 생기지 않을까 희망을 보며 살아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혼자가 아니라는 게, 누군가 걱정해주고 기도해준다는 게 오늘을 숨 쉴 수 있게 해줍니다. 덕분에 저희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어요. 예지가 동생과 싸워도 눈물이 나요.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서요. 수액을 죽을 때까지 맞으면 어때요. 그래도 행복하고 감사해요. 그 안에서 예지도 앞날에 대한 꿈을 꾸어요. 여전히 두렵고 지치고 눈물이 나지만, 사랑이 그것들을 감싸주네요”라는 따뜻한 격려의 글을 보내주셨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기적, 살아내는 힘이라고 믿는다. 여울돌 후원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졸업하는데, 스스로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이 생길 때까지 돌보기 위함이다. 현재까지 4명 졸업했고, 그 가운데 9살 때 친언니와 탈북한 은희는 2014년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경과가 좋아 골수가 잘 정착하고 있으며 지금 한동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살다 보면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기 십상이나, 그 너머에 있는 희망과 열매를 바라볼 수 있으니 크게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 역량을 키우기까지 꾸준히 ‘희망을 기증하며’ 살고 싶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2006년 10월, 스터지 웨버 증후군(신경피부증후군) 등 여섯 개의 희귀난치병을 안고 태어난 은총이 아빠 박지훈 씨와 둘이서 1,500Km 국토대장정을 완주했다. 희귀난치병 치료를 돕는 사회제도 개선이 급선무라는 인식으로 강원도 경포대에서 서울 보건복지
    부까지 가는 대장정을 감행했다. 하루 9~10시간씩 34일 내내 걷는 동안 온, 오프라인으로 1만4천 명에게 ‘희귀질환 특례법 촉구 서명’을 받아 당시 보건복지부 유시민 장관에게 제출하였고, 2009년 7월에 제도가 시행되었다.

    전에는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보호혜택이 굉장히 제한적이었는데, 현재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정한 산정특례코드, 산정특례제도 부여가 되면 본인 부담금이 10%다. 세계보건기구는 현재 7천여 종의 희귀질환을 발표했는데,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산정특례코드로 올 1월에 133종 895개 질환에 대해서만 보험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산정특례코드를 받는 절차가 매우 복잡하지만, 예전에 이조차 없었다. 여울돌은 산정특례코드가 없고, 나이가 어린 아이를 일순위로 후원아동으로 선정하고 있다.
    은총이도 2004년 돌 전에 만났는데 당시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아이였지만, 어느덧 15살이 되었다. 그동안 박지훈 씨는 은총이와 함께 희귀난치성질환 아동을 위한 철인3종경기대회를 계속 도전해왔다. 그런 은총이네를 보면서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현재 여울돌은 국내 국적 20명, 해외(중국, 몽골) 국적 2명을 합하여 22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서울미술고등학교와 협약도 맺었다. 일명 ‘리보닝 프로젝트’라고, 리보닝이란 다시 태어나다는 뜻의 ‘리본(Reborn)’과 매듭을 지어 이어준다는 뜻의 ‘리본(Ribbon)’에 현재진행형 ing를 붙인 단어다. 후원하는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 진행한 프로젝트다. 리보닝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 꿈을 나누고 희망을 지지하는 친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나 어디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2008년 결혼하고 왼쪽 눈에 이상이 있어 안과에 갔다가 2009년 ‘망막색소상피변성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원래 어려서부터 야맹증이 있어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자녀에게 유전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던 터라 어느 정도 마음에 준비가 되었는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망막의 시신경세포 가운데 흑백과 명암을 구별하
    는 간상세포 수가 점차 줄어드는 질병’으로 점차 시야가 닫히고 말 것이다.
    요즘 밤에 불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낮에는 바로 정면에 있는 것만 보이고 주변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계단식으로 병세가 진행되기 때문에 언제 시력이 다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런 때를 위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집에서는 어렵게 낳은 남매쌍둥이 잘 키우고, 직장에서는 업무에 집중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면서 희귀난치성질환을 앓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을 더욱 헤아려 본다.


    취재 글 김문영 사진 김승범




    원문 - https://m.blog.naver.com/father_school/221115638165


    #월간아버지 #두란노아버지학교 #사람의길 #여울돌 #박봉진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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